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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단심(丹心)과 항심(恒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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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단심(丹心)과 항심(恒心)

[글밭 산책] --------- 단심(丹心)과 항심(恒心)

 

권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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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와 함께 그 식당을 찾았다. 문틀과 아귀가 맞지 않는 알루미늄 샷시 문을 바짝 힘주어 밀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날도 희미한 형광등 불빛에 식당 안은 어두컴컴하다. 고기가 굽히는 냄새와 숯이 타면서 나온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찌른다. 눈까지 따갑다. 겨우 구석진 곳, 2인용 탁자가 놓여있는 자리를 잡았다. 다행이었다. 서빙을 담당하는 식당의 남자 주인, 바지랑 티셔츠를 자주 갈아입을 줄 모르는 그는 일흔이 넘었다. 나이 탓일까. 물, 반찬, 생고기 담은 접시를 식탁 위에 차리는 손놀림이 아무래도 어눌했다. 그뿐 아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살갑지 못한 건 고사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불쑥불쑥 내뱉는 말투에 정나미마저 떨어진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매일 저녁 시간이 되면 식당은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북적댔으니 말이다.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삼겹살이랑 목살, 뒷고기의 맛은 여느 식당과 다를 게 없다. 그런데도 그 식당이 성업할 수 있었던 비밀은 딱 한 가지였다. 고기를 먹은 후에 밥과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 바로 그것이다, 그 된장찌개는 주방일을 맡은 여자 주인이었다. 그 여인의 손맛으로 끓인 된장찌개를 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고기를 다 먹은 후에 나오는 뚝배기 속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서 후루룩 입으로 넣는다. 순간 된장찌개는 입안에 남아있는 미끈한 기름기를 말끔이 씻어준다. 텁텁함을 아주 칼칼하고 개운하게 말이다.

  된장의 생김새와 빛깔로는 쉽게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 없이 된장을 좋아한다. 그뿐 아니다. 오래전부터 된장이 다섯 가지의 덕(五德), 즉 단심(丹心), 항심(恒心), 무심(無心) 선심(善心) 화심(和心)을 지녔다며 흠모해왔던 우리가 아닌가. 놀랍다. 대견하다. 이 세상 그 어디에 된장처럼 오덕(五德)을 지닌 양념이 또 있을까. 

된장의 오덕(五德)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덕은 단심(丹心)이다, 아무리 많은 다른 음식과 섞여도 결코 된장, 자신 특유의 맛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식당의 된장찌개에는 멸치와 두부, 양파 혹은 파, 고춧가루, 매운 풋고추, 애호박 등 많은 음식 재료가 들어 있다. 갖가지 많은 양념과 채소와 섞여 부글부글 끓였지만, 된장은 끝까지 자기의 특유한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유독 그 집 된장찌개가 맛이 있었던 것은 된장의 단심을 소중히 지켜 준 그 여인의 손맛이 크게 한몫을 했을 것이다. 

  식탁 위에 올라와서도 뚝배기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를 물끄러미 내려 보며 내게 묻는다. 나는 본래의 내 모습을 지키며 당당하게 살아왔는가 하고 말이다. 나는 원래 누구에게도 아첨하거나 비굴하지 않았던 소년이었다. 그 어떤 불의에도 유혹되지 않았고 의리와 정의의 가치를 존중했던 청년이었다. 불쌍한 사람을 동정했고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권력과 재력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아닌 내가 되어벼렸다. 나보다 센 사람 앞에서 서슴없이 아부했다. 나보다 부족했던 사람에게는 황제처럼 군림하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나는 내 본래 모습을 수시로 바꾸어 버렸다.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나간 삶을 되돌아본다. 자신이 가엾고 불쌍하다. 밉다. 버겁고 팍팍했던 삶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변명해 보는 자신이 더욱 부끄럽게 했다. 

  오늘은 자신보다 빛깔과 맛깔이 훨씬 좋은 재료들과 섞였어도 끝까지 자신의 맛을 지켜온 된장, 그 단심을 넣어 끓인 찌개를 앞에 두고 못난 자신을 아프게 채찍질했다.

  맛있는 채소나 과일, 고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들어 버린다. 깜박 잊고 보관을 잘못했다가는 금방 상하고 끝내는 버려야 한다. 된장은 그렇지 않다. 장독 그득 담아 둔 된장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맛은 한결같고 더욱 깊어진다. 변함이 없다. 된장이 지닌 오덕(五德) 중에서 두 번째인 항심(恒心)이다. 

  지난날. 여느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많은 친구가 있었다. 정겹고 단단한 우정의 탑을 쌓아 올리며 영원히 변치 말자고 약속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헤어져 살아온 날들이 많았던 탓일까. 대부분 내 곁을 떠나고 없다. 노년의 생을 상실의 삶이라 한다. 그중에서 친구를 잃고 외롭게 산다는 건 아픔이다. 슬픔이다. 그런 내게 유안진 시인의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는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 차 한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오랜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맛이 변하기는커녕 더 깊어지는 항심(恒心)의 덕을 넣어 끓인 그 여인의 된장찌개를 조금 남겨 두고 식당을 나왔다. 친구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오늘도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다. 며칠 후, 나는 친구와 함께 다시 식당을 찾아오리라. 단심과 항심을 음미하며 한번 더 된장찌개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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