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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여백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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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산책] ------------- 여백의 향기

서 강 홍

[글밭 산책] ------------- 여백의 향기


서 강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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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친지들의 모임에서였다.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한 모 친구가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하더니 이야기보따리를 슬슬 풀기 시작하였다. 꽤나 웃기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별로 흥이 일지 않고 좌중에 좀처럼 웃음꽃이 피어나지 않았다. 친구는 폭소가 쏟아지게 하려는 듯 잔뜩 신경을 쓰고 본인도 슬슬 웃어가면서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듣는 이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였다. 그때 내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차라리 ‘재미나는 이야기’라는 말을 미리 하지 않았더라면…. ‘재미나는’이라고 주어진 전제가 이야기의 흥미를 반감해 버린 것이 아닐까. 

  재미있다는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다. 따라서 이야기하는 이가 미리 재미나는 이야기 운운함은 일종의 난센스다. 어쩌면 듣는 이의 판단을 가로챈 것이다. 말하는 이는 평범하게 이야기 하나 들려주겠다고 해야 한다. 듣는 이는 기대도 전제도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키득하니 웃음보가 터지고 그 내용에 흥취 하게 된다. 아무리 재미난 이야기라도 재미있다는 전제가 미리 주어지면 재미는 반감되어 천연적인 웃음을 자아내기 어렵다. 

  사물의 평가는 선입견이 배제된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해야 한다. 직장 후배 K가 어느 날 점심시간에 적당한 식당으로 안내하겠다며 동행할 의사를 물어왔다. 별다른 마음 없이 그를 따라간 식당의 해장국 맛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왜 진작 그렇게 좋은 식당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느냐는 나의 추궁에 웃으며 응수한 그의 답변이 더욱 이채로웠다. ‘맛의 판단은 먹는 이의 몫이니까요’. 만약 그 친구가 사전에 그 집의 해장국 맛이 끝내준다고 소개했더라도 그토록 진미를 느낄 수 있었을까? 맛의 판단은 맛이 좋다고 소리쳐 떠드는 이의 몫이 아니라 소리 없이 먹는 이의 몫이라는, 평소에 과묵하기만 했던 후배의 짧은 한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있다.

  만물에 음양의 조화가 있고 선후 좌우의 질서가 있듯이 우리들 삶에는 내 몫과 네 몫의 구분이 있다. 그것이 배열, 반복, 교환, 교차하면서 삶의 모습을 이루어간다. 보이지 않는 이러한 현상이 질서 있고 조화로울 때 아름답고 바람직한 삶이 이루어진다. 

  남의 몫을 가로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몫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도 있다. 남의 몫까지 떠맡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 몫의 많은 부분을 남에게 빼앗긴 사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세상사의 모습에서 스스로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를 한 번쯤 새겨 볼 일이다. 

  등산길에 눈길을 끄는 현수막이 있었다. ‘효는 백행지 근본’ ‘우리 모두 효도합시다’ ‘전국효도협회 oo지부’ 라고 삼행으로 쓰여진 현수막이었다. 이를 볼 때마다 밑의 두 행은 필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남의 몫을 가로챈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꼭 현수막을 붙이고 싶다면 ‘효는 백행지 근본’이라는 구절만으로 족하다. 효도를 해야겠다는 의지와 다짐은 그 글을 읽는 이들의 몫이다. 효도하자는 말까지 내가 다 해버리면 그 고전 경구를 보는 사람은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다짐하란 말인가. 

  삼행의 전국효도협회라는 단체는 더욱 필요 없는 존재다. 효는 누구나가 지켜야 할 도리요 일상사이다. 제 부모에게 효를 행함에 왜 협회가 필요한가? 효도협회가 필요하다면 식사협회도 있어야 하고 숨쉬기협회도 있어야 한다.

  여백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을 확보한다. 많은 것을 내어주는 여백, 많은 것을 포용하는 여백은 많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아무리 훌륭한 필치라도 여백을 두지 않은 그림은 짜증을 유발한다. 보는 이의 몫을 허용치 않기 때문이며 여백의 향기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동양화의 기품은 넉넉한 여백에 있다. 서양화에서도 하늘, 땅, 먼 산 등의 배색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색상, 연한 색으로 채색하며 여유 있게 공간을 두니 곧 보는 이의 상상의 세계를 남겨두기 위함이다. 

  여백의 묘미를 잃을 때 작품의 품격은 떨어진다. 쉼표 없는 음악이 있는가. 간주 없는 음악이 있는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남의 몫을 배려치 않음은 여백이 없는 그림과 같고 간주 없는 음악과 같다. 

  상대를 위하여 여백을 제공하는 배려가 곧 대화의 기법이다. 인내를 가지고 피상담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상담의 기본 기법이며 짧은 언급으로 긴 논의를 이끌어내는 이가 가장 유능한 사회자이다. 

  내 몫을 정갈하게 관리하고 상대의 몫을 정중히 그리고 충분히 비워두어야 한다. 삼류가수는 제 노래에 울고 이류가수는 관객과 함께 울며 일류가수는 관객만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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