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 산책] ------ 아버지의 땅 이 용 섭
봄비가 몇 차례 오시더니
얼음 풀린 대지가
어머니 젖가슴처럼 부드럽다
세상이 온통 넉넉하고 푸근하다
내 아버지 살아계실 때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생각난다
돈 생기면 땅에 묻어라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예, 예하며 건성으로 대답하는 내게
내 말 뒷등으로 흘려듣지 마라.
땅에 묻은 돈은 썩지 않는다
땅이 있어야 떵떵거리며 산다 하시다가
허 허 참, 내 정신 좀 봐라
가난한 선생이 무슨 돈이 있어
땅에 묻겠노 하시던 아버지
양지 바르고 물 빠짐 좋은 땅 찾아
먼 길 떠나신 지 스무 해
여태 아무 기별 없으신 걸 보니
마음에 드는 땅 골라
거기 터 잡고 오래 사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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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LH사태로 세상이 온통 들석거리고 있다. 가난한 민초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선거를 코 앞에 두고 서로 상대를 헐뜯기에 혈안이 된 위정자들의 꼴사나운 행태가 세상 인심을 더 각박하게 한다. 봄비 오시는 이 아침에 땅이 있어야 늙어서도 떵떵거리며 산다고 하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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