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 산책] ---------- 동백꽃, 그 붉은 꽃잎

기사입력 2021.05.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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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정 애

    [글밭 산책] ---------- 동백꽃, 그 붉은 꽃잎    

                             

    성 정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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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저녁 베란다에서 빨래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아침나절까지 아무런 기색 없던 동백꽃이 떨어져 누웠다.

      재작년 초겨울 내 생일날, 친구랑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린 시장의 난전에서 우린 만났다. 키가 한 뼘 남짓한 묘목에 피어있던 꽃이 신기하여 들여다보는 내게 친구는 생일선물이라며 오천 원을 주고 사서 내게 안겨주었다. 생일선물치고는 무지 근사하다는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지난여름 팔월의 그 무덥던 어느 날, 잎사귀 사이사이에 도도록하니 멍울이 생기더니 올 1월에 드디어 꽃망울 자태를 내비쳤다. 탱글탱글 부풀어 오르던 꽃망울 끝에서 뾰족이 빨간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세어보니 모두 아홉 개의 꽃봉오리다.

      단단한 겉껍질에 싸인 핏빛의 꽃잎은 터질 듯 터질 듯하면서도 쉽게 꽃잎을 열지 못하는 꽃을 보며 나는 산고(産苦)를 떠올렸다. 반년이 넘는 인고의 세월에 뒤따른 산고(産苦).

      삼월 초순의 어느 날, 드디어 한 송이 빨간 꽃을 피웠다. 위쪽의 실한 놈들도 전부 떨어져 버려서 아래쪽의 부실한 것에는 별반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스무날 가까이 우리 집 식구들 관심을 끌면서 기쁘게 해 주더니 오늘 저녁, 자태 하나 흩뜨리지 않은 채 뚝! 떨어져 버렸다.

      목련이 꽃잎을 열기 전, 붓처럼 돌돌 만 겉껍질에서 꽃잎을 밀어 올리는 모습은 과연 성처녀의 비유에 버금가고, 활짝 핀 크고 화려한 꽃잎은 중세 왕녀의 고고하고 당당함에 견주어 손색이 없다. 하지만 지는 모습은 참으로 지저분하다. 그 커다란 꽃잎을 여기저기 흩뜨리며 거뭇거뭇 떨어져 누운 모습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동백꽃 지는 모습은 다르다. 꽃송이 채 몽땅 떨어지는 모습을, 어떤 이는 참수를 당한 모습 같아 섬뜩하다고 할 정도로 매무새에 흐트러짐이 없다.

      누군가는 떠나는 뒷모습이 아름다운 이가 진정 아름다운 사람이라 했는데, 동백꽃은 꽃 중에서 떠나는 뒷모습이 정말로 깔끔하다. 꽃잎이 말라 시들기도 전에 송이 채 그냥 떨어져 버린다.

      새빨간 꽃잎처럼 정열적으로 살다가 떠나야 할 때, 미련 없이 뚝! 떨어져 버리는 동백꽃을 보며 나도 저 꽃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꽃송이를 주워 꽃잎을 세어본다. 떨어진 꽃인데도 꽃잎 하나하나를 뜯어야 할 만큼 완벽한 꽃송이다.

      하나, 둘, 셋,……오십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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