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 산책] -------------- 사월 김 수 화 아린 그리움 꽃으로 피어나는 사월 봄꽃으로 찾아드는 노란 물결의 기다림 복수꽃을 시작으로 산수유 생강나무꽃 개나리 민들레 수선화 유채꽃 애기똥풀 꽃다지 골담초 풍년화 노란매발톱 금새우난꽃 월동초 장수만리화... 우리의 기다림은 수취인불명의 편지되어 닿을 수 없고 거센 파도에 거품 되어 부서진 아이들의 간절함은 우리에게 닿지 못해 이 땅을 노란빛으로 물들인다 아직도 닿지 못한 여행지 그대 어젯밤엔 무...
[글밭 산책] ---------- 학생, 그는 누구인가 서 강 홍 지금은 노년, 중년이 된 지난날의 학생들, 어렵게 자라고 어렵게 공부하여 어려운 나라를 일으켰다.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음 하고 풍요와 평화를 누리게 된 것은 그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50, 60년대에는 중 고등학교 재학생만 해도 시골에서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학교가 귀하고 학생이 귀했으니 학교는 당연히 성역이었고 교복은 더없이 신성한 예복이었다. 어른들도 학생을 부를 때는 반드시 누구누구 학생이라며 이름 뒤에 학생을 붙...
[글밭 산책] ------------- 겨울 고운사 김 경 숙 겨울비 내리는 고운사 경내 해 저물어도, 밝다 등운산 나목(裸木) 향해 고불전 석불은 말씀의 불 켜고 연수전 기둥 나이테 둘레를 따라 무수한 잎새들 푸른 숨소리 매단다 가지 끝 아득히 맺힌 윤회의 빗방울들 삶 깊은 곳 자리한 고요의 떨림으로 새롭게 오실 봄 환히 밝힌다 ------------------------------------- 작가의 말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이때, 고운사 경내...
[글밭 산책] ---------------- 무관심 권영호 늦은 오후, 집을 나섰다. 요즈음은 내 고향을 병풍처럼 둘러싼 구봉산 밑으로 흐르는 물길 따라 이어진 방죽을 걷는 게 유일한 힐링이다. 평일에도 그랬지만 오늘 같은 주말이면 이곳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다. 온갖 운동 기구들이 갖추어져 있는 넓은 둔치에는 더욱 그랬다. 둔치 한가운데 휴식처로 지어놓은 팔각정자 난간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몇이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체 서 있는 아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황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공포감이 감도는 듯...
[글밭 산책] ------------------ 어느날 문득 이 용 섭 명절 지나 어느 적적한 하오 사람의 빈 자리가 허전하다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가 문득 네 생각이 난다 젊어 한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았던 너를 죽은 듯이 잊고 살아온 내가 소름 끼치도록 놀랍다 문득이란 이렇게 뜬금없이 누군가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와 잊고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되질하는 것인가 나이 들어가는 하늘이 나이 무게만큼 무거운지 자꾸 내려앉고 있다 너를 잊고...
[글밭 산책] -------- 2월의 노래 이화련 한 해의 차분한 시작은 2월부터라고, 누가 그렇게 써 놓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1월의 분위기는 들뜨고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첫 달은 새해를 축하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 바쁘고 2월이 되어서야 제대로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내 기분대로 하자면 나는 2월 한 달쯤은 그대로 오롯이 아껴두고 싶다. 한 해의 막을 올리는 무거운 소임은 1월이나 3월에 맡기고 2월은 그냥 그대...
[글밭 산책] ------------------- 겨울 산 김 원 호 오늘처럼 기온이 급강하해버리면 산은 홀로 바람을 막아야 한다.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오르던 사람들도 하산해 버리고 무서리 한 번에 무성하던 잎들도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고 하늘은 하늘대로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턱 없이 높아만 가고 아, 누가 있어 벌거숭이 나무의 벗이 되어 주랴. 여름내 소곤대던 개울도 모른 체하고 그 흔하던 새도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구나. 세상이 다 그런 거라며 구름 한 덩이 무연히 산을 ...
[글밭 산책] --------- 겨울 산 김 원 호 오늘처럼 기온이 급강하해버리면산은 홀로 바람을 막아야 한다.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오르던 사람들도하산해 버리고무서리 한 번에무성하던 잎들도 속수무책 무너져 내리고하늘은 하늘대로 내 알 바 아니라는 듯턱 없이 높아만 가고아, 누가 있어 벌거숭이 나무의 벗이 되어 주랴.여름내 소곤대던 개울도 모른 체하고그 흔하던 새도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구나.세상이 다 그런 거라며구름 한 덩이무연히산을 두고 산을 넘어간다. -----------------------...
[글밭 산책] ----------- 식구(食口) 조향순 추위에는 약했지만 더위는 잘 참는 편이었는데 이젠 추워도 더워도 휘청휘청하니 다 못 참겠다. 게다가 웬 비염이 생겨서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내려가고 좀 선듯하다 싶으면 재채기가 쏟아진다. 왼쪽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조금 붉은 듯해서 병원에 갔더니 동상이라고 했다. 내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부끄럽게 동상에 걸린담. 그런가 하면 난생처음으로 양쪽 눈에 다래끼가 나서 치료를 했더니 눈가장자리가 둥그렇게 보라색으로 멍이 들어서 한참 동안 외출도 못 했다. 그리 건장하진...
[글밭 산책] --------- 모 과 김 수 화 한입 깨물 수 없이 단단히 여물어 향기만 품었다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담은 듯 삶의 질곡이 울퉁불퉁 여실히 드러난다 향기에 이끌려 날아든 새가 쪼았을까 군데군데 물집자국이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도 제 물길 열어주며 끝내 향기만은 놓지 않는다 봄날의 설렘도 여름날의 짙푸른 기억도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아픔도 덩그러니, 노인정 담벼락에 기대어 햇살과 바람으로만 삭히고 계신 어머니 ---------------...
글밭 산책 ---------------- 운칠기삼 서 강 홍 진화심리학자 메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여러 단계로 풀이하여 설명하였다. 인간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로부터 안전, 사랑, 소속, 존경, 자아실현의 욕구 등 여섯 단계로 분류되며 하위 단계를 충족하고 나면 차츰 상위 단계의 욕구를 충족코자 하는 충동이 생기게 된다. 따라서 자아실현은 삶의 최종 목표이며 개인의 노력을 통한 성공의 경지라고 볼 수 있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 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
[글밭 산책] -------------------- 첫눈, 내리고 김 경 숙 어디서 오시는가 설레는 가슴을 열어 다가올 시간을 담습니다. 하얀 눈이 내려와 자꾸 내려와 창밖 나뭇가지보다 내 마음에 먼저 내려 쌓이고 단단한 땅에 스미고 마음은 그대 영혼을 안고 생각의 생각을 녹이며 젖고 젖습니다. 생각의 숲은 눈발과 눈발 사이 경계처럼 이어지고 그 생각들을 또 다른 내 안에 담으며 선택의 길 걸어갑니다. 때때로 가슴 뛰던 세월의 속살 억새꽃 하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