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밭 산책] --------- 모 과
김 수 화
한입 깨물 수 없이
단단히 여물어 향기만 품었다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담은 듯
삶의 질곡이 울퉁불퉁 여실히 드러난다
향기에 이끌려 날아든 새가 쪼았을까
군데군데 물집자국이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도
제 물길 열어주며
끝내 향기만은 놓지 않는다
봄날의 설렘도
여름날의 짙푸른 기억도
홀로 감당해야만 했던 아픔도
덩그러니, 노인정 담벼락에 기대어
햇살과 바람으로만 삭히고 계신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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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우리 집 마당 한 귀퉁이 올해도 모과는 가지가 휘어지도록 말갛게, 노랗게 저 홀로 익어가지만 직접 심어 가꾼 나조차도 외면하고 있었다. 오늘 서릿바람에 떨어져 뒹구는 모과를 주워와 마주하니, 마흔의 나이에 홀로되어 올망졸망 오남매 오롯이 키워낸 내 어머니를 보는 듯하다. 봄부터 꽃피워 그 여름 폭풍과도 맞서며 풍성한 결실을 이뤄냈지만 제대로 환영받지 못한 모과, 그리고 어머니라는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