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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노예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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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노예근성

한국인의 노예근성




  조선왕조는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노예나 다름없는 나라였다. 해마다 명나라와 청에 공물로 여자와 거세한 남자를 노예로 바치고 온갖 공물을 바쳤다.

  심지어 왕족 양반 여성도 명에 노예로 끌려갔다. 명에 끌려가는 날은 온 집안이 통곡 소리로 가득했다고 한다. 

  양반은 아버지나 남자형제가 명에 가서 자기 딸 찾아서 돈 주고 노예 된 딸을사왔는데이게 환향녀(화냥년)이다.

  신분이 높을수록 몸값이 비쌌고 낮은 신분의 여성은 평생 조선에 돌아오지 못했다.

  조선의 학자 성현(1439~1504)은 "조선 사람 중 절반이 노비"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인권과 민족의식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라고 해도 타민족들을 천한 신분으로 삼았지, 동질감이 있는 같은 민족을 천한 신분으로 만드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물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노비 인구가 전체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10%를 넘지 않았는데 고려 말 몽골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 30%까지 늘어났다. 

  세종 때는 전 인구의 65%가 노예였다고 한다. 

  노비 이외에 광대, 공장, 백정, 기생, 무당,천민, 상여꾼, 하천배 등을 '상놈'이라고 불렀는데, 그 숫자가 전 인구의 70퍼센트(실제 노비는 40%)였다.

  이처럼 하층민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노비의 가격은 조선시대 내내 조랑말  한 마리의 절반수준이었다. 

  그리고 그 노비는 대를 이어 세습이 된다. 1801년 순조는 노비안을 모두 불태워 버리라고 명했으나, 공노비에 한정된 것이었다. 

  1894년 갑오개혁에서 신분제가 철폐됐지만 땅 한마지기 없는 농민은 노비나 다름없었다. 해방 이후에도 노비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 500년간 중국의 지배 받았고 일제에 35년을 지배 받았다.

  양국에서 독립한 것은 대한제국 13년과 대한민국 70년이다.

  대한제국 13년도 러시아에 아관파천이나 하고 다녔다.

    노예제 연구가인 경제학자 스탠리 엥거만은 얼마 전 방한 당시 가졌던 한 강연에서 조선시대의 노예제도를 언급하며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특징을 지녔다"고 말한 바 있다. 이유인 즉 조선시대 노예가 모두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조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예는 주로 전쟁 포로 등 피정복지의 이방 민족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이웃 나라를 침공한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노예로 쓸 수 있는 전쟁 포로나 이방 민족이 없었다.  

  미국의 보호 아래 최초로 중국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이 대한민국 70년 역사가 전부다.

  노예근성이란 남이 시키는 대로 주체성 없이 남의 눈치만 보는 성질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자유가 주어졌거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저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국 노예 상태에 만족하는 정신 또는 근성을 말한다.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또는 그것이 전체(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착각하고 저항하지 않는다. 

  이런 성향이 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부와 권력을 이용하는 특권층이 출현하고 그 사회를 조종하고 통제하려 든다.

  결국 대부분의 국민들이 낮은 수준이라도 평등하길 원하며 국가권력에 지배받는데 익숙하며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해도 저항할 줄을 모른다. 

  스탠리 앵거만은 칼럼에서 "무상배급(보편복지) 좋아하고 책임감 없고 사기 잘치고 이성적 사고가 부족해 선동 잘 당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조선 노예 근성이다. 지금의 한국인들도 이런 노예근성에 잡혀 있어 정권의 폭정에도 전 국민 40% 정도가 이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맹신적으로 지지하며 그를 추종한다."고 밝히고 "공교롭게도 전 국민의 40% 전정권 지지도가 조선시대의 노예 비율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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